
유리병 속에서 로즈메리 한 줄기가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이름은 '드라이 로즈메리', 하지만 본명은 '로즈마리오 디 마리오 3세'. 그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한 농장에서 태어나 3개월 간의 자연 건조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된 귀족 허브였다. "난 신선할 때보다 지금이 100배는 향기롭다고!" 그가 병 벽을 두드리자 옆에 있던 마늘 가루가 소리쳤다. "님, 그거 자화자찬임? 우리 다 들림."
로즈마리오의 운명이 바뀐 건 그날 오후였다. 주인인 요리사가 새로 산 신선한 허브들을 냉장고에 넣는 순간, 병 속에서 모든 게 들렸다. "오늘부터 이 바질과 타임이 메인 허브예요!" 요리사의 목소리에 병 안의 허브들이 술렁거렸다. 드라이 오레가노가 울음을 터뜨렸다. "우린 이제 버려지는 거냐…?" 로즈메리 오는 잎을 부르르 떨며 선언했다. "내가 주방을 구할 거야. 드라이 허브의 반란을 일으키겠어!"
첫 번째 작전은 라자냐 요리였다. 신선한 바질이 냉장고에서 나오는 순간, 로즈마리오가 병뚜껑을 흔들어 열었다. "바질 친구, 네 향기만으로는 부족해!" 그는 공중으로 뛰어올라 라자냐 소스 냄비 속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요리사가 뒤늦게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 라자냐 향이… 왜 이리 칼칼하지?" 신선한 바질이 밀려난 자리에서 로즈마리오가 속삭였다. "이게 바로 드라이의 힘이야."
그의 야망은 점점 커져갔다. 다음 타깃은 로스트 치킨. 요리사가 신선한 타임 가지를 들고 오븐 문을 열자, 로즈마리오가 병을 흔들며 경고했다. "타임은 시간을 버는 자가 아냐! 시간을 지배하는 건 나야!" 병에서 튕겨나간 그의 잎사귀가 공중에서 360도 회전 후 닭 엉덩이에 정확히 착륙했다. 결과는 대성공. 요리사가 입안을 털며 말했다. "이건… 뭔가 특별한 맛이야." 병 속 허브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드라이! 드라이! 드라이!"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주방에 '유기농 신선 허브 전도사'라는 인플루언서가 방문한 것. 그녀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말했다. "드라이 허브는 죽은 허브예요! 진정한 요리는 신선함에서…" 로즈마리오가 분노로 병을 흔들자 후추 알갱이가 덜컥거렸다. "님 진정해. 우리 다 흔들려서 먼지 됨."
결전의 날. 인플루언서와 요리사의 대결이 펼쳐졌다. 주제는 '허브 크러스트 스테이크'. 신선 파슬리, 타라곤, 시트론이 화려하게 준비되는 동안 로즈메리 오는 작전을 개시했다. 먼저 드라이 타임이 후추 그라인더에 뛰어들어 "난 드라이 타임이 아니라 드라마 타임이야!" 외치며 분쇄됐다. 오레가노는 올리브 오일 병에 기어들어가 기름을 향기로 물들였다. 마지막으로 로즈마리오가 뛰어난 점프력으로 식육용 해머에 달라붙었다. "이제… 내 향기가 고기 속까지 스며들게…!" 요리사가 해머를 내리치는 순간, 그의 잎사귀가 스테이크에 박혀버린 것.
대결 결과는 예상치 못했다. 인플루언서가 첫 입을 뜨자 눈이 동그래졌다. "이… 이 복합적인 향은… 마치 건초장에서 선셋을 보는 느낌?" 로즈마리오가 병 속에서 승리의 세리머니를 했다. "신선함은 덜 익은 거다! 드라이는 숙성이 된 맛이야!"
그날 밤, 주방은 축제 분위기였다. 드라이 허브들이 유리병뚜껑을 탈출해 카운터 위에서 파티를 벌였다. 로즈메리 오는 올리브 오일 움푹 파인 곳을 왕좌로 삼고 선언했다. "이제부터 이 주방의 법칙은 간결함! 1. 오래 보관 가능 2. 향기 배가 3. 어디에나 첨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요리사의 손에 들려 다시 병에 갇혔다. "이 자식들… 다 몰래 나왔었나?"
### 에필로그: 영원한 드라이의 영광
다음 날, 요리사는 유리병에 손수 만든 라벨을 붙였다. [특급 드라이 허브 혼합물 - 비상시 사용]. 로즈마리오가 후추 알갱이를 밀어내며 중얼거렸다. "난 비상이 아니라 상시 사용해야 할 허브야." 그 순간 냉장고 문이 열리며 신선한 허브들이 들어왔다. 바질이 교만하게 말했다. "드라이 따위가 진짜 허브냐?" 로즈마리오가 향기를 뿜어내며 답했다. "넌 1주일 후엔 쓰레기통 신세다. 난 1년 후에도 여기서 네 후배들을 지켜볼 거야."
주방 시계가 12시를 가리키자, 유리병 안에서 드라이 허브들의 귓속말이 시작됐다. "내일은 파스타 소스 작전을 개시한다…" 병 밖에서는 요리사가 모르는 새, 드라이 허브들의 영원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